전두환 씨가 23일 오전 8시 45분 혈액암으로 연희동 자택에서 사망했습니다. 사망이 알려진 직후 전두환 씨를 국가장으로 치러야 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는데요.  5.18 광주 민주화 학살 관련한 역사적 사건으로 인해 국가장은 치러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또한 국립묘지안장도 불가할 것으로 예상이 됩니다. 이는 정치적 견해와는 달리 여야 모두 공감하는 국민 공통의 역사적 평가로 마무리될 것 같은데요. 이로 인한 진통이나 큰 논란 없이 순조롭게 마무리될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대한민국은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기로에 서있는데요. 장수한 전두환 씨의 인생과 국제정세를 비교하여 그가 걸어온 인생을 살펴보겠습니다.

 

아마 국내 이슈에만 매몰되지 않고 국제정세까지 포함하여 전두환의 일생을 살펴본 글은 처음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또한 그가 어떻게 죽지 않고 장수했는지 실마리를 찾아낼 수 있는 단서를 찾아내실 수도 있겠네요.

 

전두환은 1931년 1월 18일 생으로 경상남도 합천군 율곡면 내전 리에서 태어났습니다. 1931년 전후로 대공황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영국이 금본위 제도를 포기했으며 일본이 만주를 침공하는 등 2차 대전의 전운이 감돌고 있던 때입니다.

 

전두환 초기 장교 시절

전두환은 학창 시절 권투와 축구를 했으며 공부보다는 주먹으로 승부 보는 타입으로 보스 기질이 있었습니다. 1955년 육군 소위로 임관하여 1961년 5월 16일까지 이 시기가 전두환의 초기 장교 시절입니다.

 

전두환은 1961년 4월 육군본부 특전감실 기획과장 직무대리가 되었으며 예비장교 훈련단 준비위원으로 발탁되었습니다. 이 당시 세계의 패권은 스탈린이 죽고 소련에 복귀한 대륙세력이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이에 저항하여 매카시즘이 일어나 공산 세력을 축출하기 시작했죠. 미국은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으며 소련과 신경전을 벌였고 핵전쟁 가능성도 논의되고 있었습니다.

 

한편 중국은 대약진 운동 실패로 경제가 파탄나버렸죠. 그러던 어느 날 1961년 5월 16일 군사정변이 일어납니다. 전두환은 이 시기에 발 빠른 대처로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합니다.

 

전두환의 벼락 출세

박정희 세력은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에게 쿠데타 세력을 지지하는 시가행진을 하라고 종용했습니다. 그러나 육사 교장인 강영훈이 이를 저지하고 있었고 전두환은 이 사실을 상부에 밀고하여 김종필의 지원을 받아 육사를 장악하게 됩니다.

 

5월 18일 전두환은 군부 혁명 지지 시가행진을 지휘하였고 30살의 나이로 국가재건 최고회의 비서관이 됩니다. 당시 전두환의 계급은 대위였습니다. 그야말로 벼락 출세를 하게 된 것이죠.

 

1963년 전두환은 하나회를 결성하여 박정희 대통령의 친위대가 됩니다. 1977년 소장으로 진급했고 1978년 육군 제1보병 사단장이 됩니다. 1979년에는 국군 보안사령관이 됩니다.

 

1979년 10월 26일 전두환이 국군보안사령관이 된 그해에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합니다. 이 시기에 미국은 소련과의 냉전에서 승기를 잡았습니다. 베트남의 수렁에서 벗어난 미국은 소련을 아프가니스탄의 수렁으로 유인했는데요.

 

12.12 쿠데타

석유로 달러를 거래하는 뉴라이트 체제를 시작합니다. 한편 마오쩌둥의 실정에 실망한 중국의 인민들이 들고일어나 천안문 사태가 일어났으며 대안으로 덩샤오핑이 떠오르고 있었습니다.

 

정리하자면 대륙세력인 소련이 몰락하고 미영 연합이 떠오르고 있던 상황입니다. 이 시기에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한 틈을타 전두환은 12.12 쿠데타를 일으킵니다.

 

다음 해인 1980년 5월 18일 전두환은 비상계엄령을 전국으로 확대하여 김대중, 김종필, 김영삼을 영장 없이 체포하고 연금했으며 국회가 폐쇄됩니다. 이에 반발하여 광주 민주화 운동이 일어났으며 계엄군은 전라도를 포위하고 발포합니다.

 

한국 역사상 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화기를 사용한 폭력진압으로 인해 부정적인 이미지가 낙인으로 찍히게 되었는데요. 동학농민운동 진압과 비교해 볼 수 있겠지만 당시 수많은 고위층이 친일 세력이 된 배경을 생각해보면 상황이 다릅니다.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과 호화로운 말년

이후 퇴임까지 전두환의 정치인생을 보면 박정희 시절과는 다르게 철저히 친미 노선을 따랐고 미국의 말을 잘 듣는 대통령이었습니다. 5.18 유혈진압 사건이 있었을 당시에도 미국은 개입을 하지 않았죠.

 

전두환은 친구인 노태우를 대통령으로 밀어줬으며 퇴임 이후 무사히 지낼 수 있었습니다. 한편 미국은 플라자 합의를 실행하여 경제로 항전했던 일본을 완전히 무너트렸으며 종이호랑이가 된 소련이 1991년 붕괴됩니다.

 

전두환 지지자들도 있지만 수많은 사람들에게 원한을 산 그는 어떻게 90세까지 장수할 수 있었을까요? 노태우 전 대통령과 다르게 끝까지 국민들에게 사과하지 않았던 그는 처세술의 달인이었습니다.

 

과연 그는 평생을 애국의 마음으로 살았을까요 아니면 부귀영화를 위해 전속력으로 달렸을까요?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는 본인이 어떠한 종류의 사람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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