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하면 작은 나라 주제에 제국을 붙이고 저항하다 나라 빼앗긴 이미지가 있다. 그 후 히로시마, 나가사키에 원자폭탄 떨어지고 대한민국으로 독립했다는 생각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역사를 공부하다 보면 생각 이상으로 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조선, 대한제국,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한민국

근대사를 설명할때 정치문제 때문에 항상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좌, 우와 상관없이 정치는 다양한 카드를 많이 보유할수록 좋고 시기와 상황에 맞게 그 카드를 쓰면 된다는 사상이 있어, 절대로 정치적 이념이 없는 글임을 미리 밝힌다. 정치적 이념에 관계없이 순수하게 역사적인 내용들을 살펴보자. 조선, 대한제국 그리고 대한민국은 어떠한 연결성이 있었을까?  

흥선대원군이 조선을 통치하던시기 세계 최강대국이었던 청나라가 공식적으로 박살이 났다. 화약무기 앞에 최강의 군사력을 자랑했던 유목민족들은 속절없이 밀려나고 세계의 바다를 서양인들이 지배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유럽도 조용한 것은 아니었다. 동인도회사를 지배했던 베어링계 영국 귀족들과 유대인 네트워크 간의 금융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아편전쟁과 대한민국의 탄생 배경

2차 아편전쟁으로 청나라가 세계적인 망신을 당하고 서태후가 물러났을때는 이미 베어링계 영국 귀족들이 금융전쟁에서 패배한 상황이었다. 여기에 힘싸움에서도 밀리고 있었는데 세포이 항쟁이 결정적이다. 이 당시 조선은 삼정의 문란으로 인해 각지에 민란이 일어났다.

그동안 조선은 중국대륙을 차지한 국가에 기대어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기둥이 무너진 것이다. 즉 위기에 처한 것이고 이것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 흥선대원군의 미션이었다. 그러나 인도와 중국에서 밀려난 베어링계의 투자를 받은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일으켰고 흥선대원군의 개혁은 실패했다.

 

흥선대원군의 실패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임시정부

정치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조선은 잠시 좋아지는것 같았지만 결정적으로 통화정책이 실패하여 국가가 파산위기에 몰렸다. 또한 흥선대원군은 선 저항, 후 협상식의 외교술을 채택했는데 이것은 시대에 맞지 않았으며 일본에 비해 국제정세를 잘 몰랐다. 이 당시 내쫓은 서구권의 원양 함선들은 귀중한 손님들이었던 것이다.

 

흥선대원군은 쫒겨나듯 물러났고 이제 고종은 조선의 멸망을 막아야 하는 최대의 위기에 직면했다. 다양한 국가들과 협상하며 외교적인 탈출구를 모색했지만 서구권 국가들의 관심 밖이었다. 조선에서 대한제국으로 국명을 바꾸고 광무개혁을 일으킨 것도 이론상으로 보면 최선의 선택이다. 또한 대한제국의 탄생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생겨나게 되었다.

 

대한제국은 왕권의 종말 그리고 대한민국의 시작

서구식 건물을 짓고 근대국가 될것을 천명해야 투자자가 몰리는 것은 당연했다. 국명도 바꾸고 건물도 바꾸고 모든 것을 미리 다 바꾸어 놓아야 투자자들에게 보여줄 것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고 관심 갖는 나라는 러시아뿐이었다. 그나마 러시아는 당시 최강대국으로 알려져 있었기에 고종은 위기를 벗어 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러시아는 이미 금융 네트워크 주류에서 밀려나 있는 상황 즉 겉보기에만 강한 나라였다. 패배는 정해져 있던 것이다. 러시아 제국은 피의 일요일 사건과 볼셰비키 혁명으로 퇴장하고 대한제국도 일본에게 점령당하여 역사를 마감한다. 그러나 알려진 것과 달리 이완용의 싸인 한 장으로 나라가 망하지 않았다. 대한제국군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신 무기와 강도 높은 훈련으로 북간도 일대에서 청나라를 상대로 대승을 거뒀으며 결코 만만한 전력은 아니었다.

 

러시아와 대한제국의 퇴장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대한제국의 3만 병력과 항전에 가담한 국민군은 대한민국 탄생의 초석이 되었다. 러일전쟁 승리 후 일본에 가담한 친일파들이 급증하면서 대한제국군을 해산하였지만 해산을 거부하고 항전이 시작되었다. 1907년 시위대 1 연대 1대 대장 박승환 참령이 자결하며 시가전에 들어갔고 13도 창의군이 결성되었다. 13도 창의군은 독립 의군으로 불렸다. 이들은 서울 탈환 작전 실패 후 북쪽으로 퇴각하면서 독립군이 된다.

 

 

 

한편 북쪽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전라도에 갇힌 독립 의군은 일본제국군이 일으킨 남한대 토벌전으로 전멸한다. 고종이 암살당하고 왕이 없어지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세워지며 독립군은 계속해서 활약한다. 일본은 징병제 시행하였고 서구권 국가들의 지원을 받아 제정적으로도 풍족했다. 때문에 엄청난 수의 병력을 자랑했다. 그러나 대한제국군은 3만의 정예 대한제국군이 전부였고 나머지 병력은 임진왜란처럼 자발적으로 결성된 국민군으로 채워진 것이다.

 

대한민국은 국민군이 세운 나라

러일전쟁의 진행과정을 보면 엄청난 규모의 육상전투가 일어났는데 3만 군대가 아무리 정예화되어있어도 일본군의 징집병을 이기기 어려웠으며 러시아의 패배로 인해 이미 대한제국 권력층의 이동이 일어난 상황이다. 강대국의 힘을 빌리지 못한 대한제국은 없어지고 국민군이 주축이 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시대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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