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암살 사건 1949년 6월 26일

김구 선생님은 1940년 3월 13일부터 1947년 3월 3일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었으며 무장투쟁으로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위대한 인물들이 그렇듯이 암살로 생을 마감했다. 김구 암살 관련하여 온갖 이야기들이 많이 나온다. 미국에서 케네디 암살이 최고의 미스터리라면 국내에서는 김구 암살 사건이 가장 큰 미스터리일 것이다.

백범 김구 암살 미스터리

특히 김구 선생님의 암살 사건은 국내적으로는 좌우파간 정치 관련하여 예민한 주제다. 또한 국제적으로 봐도 민족주의자는 그 나라 국민들에게 높은 지지를 받기 때문에 암살 관련해서 예민한 주제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만큼은 좌우파 정치 이념 걷어내고 실제로 배후가 누군지 이야기해보겠다. 그리고 김구 암살의 미스터리를 풀어보고자 한다.

 

이야기에 앞서 김구 암살 배후 관련하여 알아야 될 사건이 있다. 이 사건을 알아야지 결과와 과정이 모두 이해가 된다. 그 사건은 바로 요즘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미얀마 민주화 국민군 전쟁이다. 미얀마 군부 독재에 맞서 미얀마 국민들이 민주화를 위해 들고일어난 사건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아웅산 수치가 있다.

백범 김구 주석과 아웅산 장군

아웅산 수치의 아버지는 아웅산 장군이다. 미얀마의 독립을 위해 싸운 독립투사들의 수장인데 김구 선생님과 비슷한 포지션이다. 두 영웅의 최후도 비슷했다. 1949년 6월 26일 백범 김구 선생님은 서울 경교장에서 서예를 하고 있었다. 육군 포병 사령부 장교 안두희가 문안인사를 드리겠다고 찾아와 권총으로 그를 암살한 것이다.

 

백범 김구 암살 2년 전인 1947년 7월 19일 아웅산 장군과 그의 형을 포함 7명의 장관들이 양곤 사무국에서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7명의 완전 무장한 괴한이 지프차를 타고 나타나 회의장으로 돌격했다. 괴한들은 경호원을 모두 죽이고 총기를 난사하여 아웅산 장군을 포함 5명이 즉사했다.

서로 닮은 죽음

무더운 여름에 일어난 비극인 것이다. 영국 식민 정부는 임시 내각 총리 우소를 암살의 배후로 지목했고 김구 암살 사건의 경우 이승만이 배후로 거론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이 함부로 민족주의 수장을 암살할 만한 권한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사장이 있는데 부장도 아닌 과장이 마음대로 유능한 직원을 해고한다?

 

직원을 왕따 시켜 퇴사를 유도하더라도 사장의 동의가 없이 일을 추진한다면 단단히 찍혀 승진에 지장이 있을 것이다. 또는 불필요한 사내 정치질로 인해 사장이 괘씸죄로 해고할 수도 있다. 백범 김구와 아웅산 장군의 암살 사건 역시 비슷한 상황일 것이다. 민족주의자들은 미국의 입장에서 매우 비효율적인 존재들이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른다.

명분과 국민적 인기를 동시에 갖고 있으면서 이들의 외교적 입장은 상대국으로부터 최대한의 이득을 취하는 것이다. 친미, 친소, 친중을 할 수 있지만 종미, 종소, 종중을 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국익을 중요시한다. 그렇다면 이들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패권국인 미국은 민족주의자들을 필요로 했다.

 

이들이 독립하여 나라를 되찾으면 패권국을 위협하는 2 진급 나라들의 세력이 약해지는 것이다. 파키스탄이 인더스강을, 방글라데시가 갠지스강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인도가 힘을 쓰지 못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세력 균형이론인 것이다. 패권국인 미국은 이들을 필요로 했지만 반대로 이들을 제거한 것으로 보인다.

알파와 오메가 전략

이러한 알파와 오메가 전략은 오늘날까지 유효하다. 이승만 박사는 당시 우리나라에서 최고 외교 전문가였으나 백범 김구 선생 역시 국제정세와 분위기 감지, 즉 눈치가 빠른 인물이다. 이승만 박사가 시도해 보았으나 실패한 남북 합작을 줄기차게 고집했던 것은 그의 인생을 마무리할 마지막 사업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는 남북이 분열되면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 미래를 예견했다. 살만큼 살았고 생의 미련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조국의 광복을 보았고 기쁨 뒤에 찾아오는 분열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배후가 미국이라는 것이 100% 확실한 것은 아니다. 이렇게 예민한 주제라면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야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독립의 길은 희생의 길이다.

다만 정황상 민족주의를 대표하는 수장들은 가지치기당한 것 같다. 위에서 언급한 배후가 맞을 확률은 78% 이상이며 그 외의 확률은 22% 미만으로 본다. 백범 김구 선생과 아웅산 장군은 애국 활동으로 큰 세력을 형성했지만 부귀영화를 누리며 편안한 삶을 살지 못했다. 이들의 희생을 통해 각국은 영토와 문화를 지키며 오늘날까지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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