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인들은 자본주의라는 아이디어가 없어서 실행하지 못한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를 실행하려면 화폐경제가 실행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대량 유통이 필수다. 몽골제국 시절에는 이것을 말, 소, 낙타를 이용한 수송으로 하려 했는데 흑사병으로 실패하고 선박을 이용한 대량 유통이 시작되면서 화폐경제가 정착되었다.

 

동물을 이용한 육지 수송에는 큰 결점이 있었는데 동물을 먹일 건초 값이 수송하는 제품의 값을 초과하게 되면 손해를 본다는 것이다. 말이 죽어버리거나 말똥, 말 사체 등 위생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증기기관차가 발명되면서 적은 비용으로 엄청난 물량을 육지로 수송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도 비행기보다는 철도 수송이 효율적이다.

증기 버스나 자동차도 개발되었으나 물자 수송용은 아니었고 교통수단으로써 마차를 대체하는 역할이었다. 제임스 와트가 1765년 증기기관을 만든 이후 1804년 트레비딕이 증기기관차를 최초로 만들었다. 증기기관은 석탄을 이용하는데 목재 대신 석탄을 에너지원으로 쓰게 된 것이다. 목재 문명에서 석탄 문명으로의 전환이다. 이로 인해 과도한 벌채가 줄어들어 환경이 개선되고 목재는 가구를 만드는 데 사용된다.

 

그러나 드레비딕의 증기기관차는 상용화되지 못했다 주철로 만든 선로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깨진 것이다. 조지 스티븐슨은 연철 선로를 만들어 이문제를 해결했고 1830년 가장 뛰어난 성능을 지닌 증기기관차 로켓호를 만들어 상용화를 촉진시킨다. 1825년 연철 레일을 채택한 로코모션 1호가 상용화를 스타트했다면 1830년 만들어진 로켓호는 상용화에 불을 댕긴 것이다.

영국 리버풀 - 멘체스터 철도가 성공적으로 개통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로켓호를 이용했다. 이때 노선의 길이는 50km였는데 각국에서 철도를 도입하면서 1835년 미국에서는 노선 길이가 1,600km를 넘게 된다. 1850년 미시시피 동부 모든 주에 철도가 깔리고 토머스쿡이 철도 여행 패키지 투어를 만들면서 여행의 아버지로 불리게 된다.

 

1869년 서부 이주가 시작되면서 서부에도 노선이 깔리고 1893년 증기기관차의 시속이 160km를 돌파한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증기기관차는 대형화, 고속화, 강력화가 되지만 한계가 있었다. 1919년 디젤 기관차가 발명되었는데 1945년 2차 대전이 끝나면서 디젤 기관차로 대체된다. 연기가 나지 않으면서도 빠르고 가볍고, 손이 덜 가서 더욱 편리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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