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중국은 황하문명이 꽃피우고 주변지역으로 확대되었다고 생각하지만 장강문명이 발견되면서 학설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황하와 장강(양쯔강)은 세계급인 매우 큰 강으로 두세력이 다를수밖에 없겠죠. 인간은 강을끼고 살아가기 때문에 강이 크고 길수록 강력한 문명이 있을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예외는 있죠 강주변에 접근하기 어려운 밀림이 둘러 쌓여있다면 이야기가 또 다를것입니다.
장강문명은 기원전 1만4천년전부터 있었다고 하는데요. 위찬엔 유적에서 볍씨를 발견했지만 재배한것인지는 알수없고 1만2천년전에 존재한 셴런퉁,루퉁환 유적에서 독자적인 농경의 증거를 발견했습니다. 기원전 5천년전부터 4천년까지 하모도문화가 나타나는데 벼농사,돼지의 가축화,어로,수렵의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기원전 3천8백년 ~ 3천500년경의 유적인 쑹쩌문화에서는 구슬팔찌 등의 장식품이 등장하였고 기원전 3천5백년~기원전 2천2백년의 량주문화로 이어집니다.
장강문명과 함께 협력및 경쟁을 했던 요하문명 (홍산문명)은 기원전 8천년~ 기원전 1500년까지 지속되었는데요. 현재 황하문명의 원류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신낙문화부터 시작해서 소하,흥륭,사해,부하,자오바오거우로 지어지며 기원전 4천500년~ 3000년에는 홍산문화가 나타납니다. 연도를 보면 장강문명의 하모도문화와 요하문명의 홍산문화는 경쟁관계라고 볼수 있는데요. 피라미드식 적성총과 다량의 옥기가 발굴되어 국가단계에 진입한 상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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