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록전쟁은 기원전 최초의 대전이라는것에 있어 상당히 의미있는 사건입니다. 그만큼 동쪽에 거대한 양대세력이 있었다는것을 뜻하는데요. BC 2702~2692년에 있던 전쟁이고 서쪽에서는 BC 1700년부터 거대세력간에 전쟁이 일어나게 되죠. 메소포타미아 지역이 문화적으로 가장 앞선곳은 맞다고 생각되지만 황하를 두고 결코협력하지 못할 이해관계의 충돌이 있었던것입니다. 



개인적으로 인간의 정신이 뛰어나다면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데요. 최후의 외교가 바로 전쟁인만큼 절박하게 승리를 바랬을것입니다. 당시에는 대군을 컨트롤 하는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체계적인 병력운용은 어려웠을것이며 지역지도자 중심으로 도시와 마을을 습격하는 형태였을것입니다. 수성 및 공성뿐만 아니라 


중앙에서 만나 대교전도 일어났을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탁록대전 신화를 현실적으로 해석하여 그 진행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치우의 군대가 불화살로 공격하여 연기가 퍼졌고 그사이에서 쉴세없이 공격하여 황제헌원의 장군인 유망군이 후퇴하였습니다. 



치우천황은 9군단을 넷으로 갈라 양옆으로 돌아 진군시켰고 자신과 친위대가 중앙에서 시선을 끌었습니다.  중앙군의 수를 보고 달려든 유망군은 양쪽에서 포위되어 대패하고 맙니다. 분노한 황제헌원은 주력군을 이끌고 전장으로 도착하였는데 치우천황이 보기에 그수가 많고 요하연합의 상징인 용깃발이 펄럭이고 있었습니다. 


장강연합 (남아시아)의 치우백성은 전쟁은 최대한 피하며 살려는 사상을 갖었고 유순했습니다. 전쟁이 계속되자 동료들의 죽음으로 인해 정신적 충격을 받게 되는데요. 반면 요하연합의 황제 헌원군은 전쟁에 익숙하였으며 무시무시한 맹수군단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맹수군단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밀린 장강연합군은 다행히 후방으로 밀리는 과정에서 맹수의 전열이 흐트러졌고 공복으로 인한 공격성 밖에 없는 맹수는 인간처럼 집요한 추적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후 장강연합 진영에 묘국지원군이 도착하여 힘을 얻었고 다음전투에는 묘국병사가 선봉에 섰습니다. 요하연합국의 공격수레에 불나방처럼 몸을 던진 묘국전사들은 


중앙을 돌파하여 적의 사기를 꺾었습니다. 그러나 이과정에서 묘국의 젊은지도자가 죽어 비탄에 빠지게 됩니다. 이후 전장의 기상상태가 안좋아 천둥번개가 치고 안개가 깔려 장강연합군이 게릴라전으로 요하연합군을 괴롭히게 됩니다. 이과정에서 황제헌원은 죽음의 위기를 벗어나 간신히 탈출하게 되는데요. 양측은 대규모전투에 대비해 군을 재정비 하였습니다. 전쟁이 지속될수록 피해가 커지자 빠르게 전쟁을 끝내야 한다는 압박감이 양측군영을 짓눌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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