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번째 전투는 난전이였으며 눈에 보이는대로 베고 치며 서로의 진영이 구분되지 않을정도 였습니다. 피의못과 벼의산이라는 표현이 어울릴정도로 치열한 전투였죠.  당시에 전투요원이 따로 있었던것은 아니였으며 수레를 만들거나 열매를 모으고 농사를 짓는 사람 등등 전쟁이 아니였다면 평화롭게 살고있을 평범한 사람들이였습니다. 탁록대전 최대 난전중 황제헌원의 후방에서 치우천황을 돕기위해 과보국의 군대가 도착했습니다. 과보군의 병사는 덩치가 크고 강했기 때문에 요하연합군은 후퇴할수밖에 없었습니다.    



그후 판천을 차지한 장강연합 치우천황군이였지만 가뭄이 들어 병사들의 사기와 전투력은 바닥까지 떨어졌습니다.  황제헌원의 최고 무사인 응룡장군은 치우천황과의 결투끝에 목을 배어 버리고 전쟁을 종결시킵니다. 전쟁은 끝났지만 양측의 피해가 너무커 전쟁은 생각도 하지 못할지경이였으며 생존하기 위한 활동을 하기에도 벅찼습니다. 한쪽이 어느한쪽을 압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모두가 패배한 전쟁이였는데요.  전쟁의 상처는 오랜시간동안 아물지 못했고 992년뒤 그나마 피해가 적었던 히타이국은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공격하여 자원을 얻게 됩니다. 



황하지역에서는 작은나라와 도시,마을이 새로 건설되며 1637년뒤 상왕조가 탄생합니다. 한핏줄 한형제인 동인들은 이후 탁록대전과 같은 전쟁을 반복합니다. 유목민인 북동인들과 정주민인 남동인은 물과 기름처럼 섞이기 힘들게 되었는데요. 그래도 뛰어난 지도자들의 정치로 물과 기름같던 북동인과 남동인이 황하를 중심으로 섞이게 됩니다. 한반도역시 북동인과 남동인이 섞인 문명을 건설했으며 황하지역보다 북동인의 문화와 기질을 갖고 있습니다. 다만 한반도는 백두산폭발이후 유목민들과의 단절이 일어났으며 이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만주지역을 중화 (황하)지역 사람들에게 넘겨주고 맙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것은 국익으로 인해 마주보는 국가들이 다투고 있지만 눈으로 보이듯이 같은 민족이라는것입니다.  물론 민족은 민족 국가는 국가 차원에서 그 역할을 잘 이해해야 할것입니다. 결국 최종적인 목표는 온인류가 다투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것이겠지요. 우리는 그과정에서 살고 있습니다. 


반응형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