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은 한국은행 총재입니다. 각국 중앙은행장은 대통령이 아니라 비공식 라인으로 국제연합이 임명하는데요. 그만큼 중앙은행장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한국은행 총재이면 국제 인물로 봐도 무리가 아닌 것이죠. 그러나 한국의 원화는 고립 화폐로 세계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합니다. 국제가 임명한 국내 인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경제계 리더

국제적 지위를 갖은 인물이지만 국내 정계를 이끌어가는 이주열 총재와 신현송 교수를 소개해보려고 합니다. 정계 인물이 관리자라면 경제계 인물은 국제무대를 이끌어가는 선장이라 할 수 있는데요. 우선 이주열 총재의 생애를 보면 덕수 이 씨로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에서 태어났습니다.

1952년생으로 이주열 총재의 아버지는 공무원이었으며 고등학교 때까지 강원도에 있는 학교를 다녔습니다. 1977년 2월 연세대학교 경영학 학사로 졸업합니다. 공부로 서울에 입성하여 첫 스타트를 하게 된 것이죠. 이후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1977년 2월 한국은행에 들어갑니다. 10년 후 인 1988년 8월 펜실베니아 주립 대학교 경제학 석사가 되고 그해 12월 대전지점 과장을 맡게 됩니다.

 

이주열 총재 프로필

1991년 조사 제1부 과장이 되고 1993년부터 국제 금융부 과장, 외환 업무 과장, 1998년 조사국 국제경제실 실장, 뉴욕사무소 수석 조사역 담당, 2003년 조사국장, 2005년 정책기획국장, 2012년 하나금융경영연구소 고문, 2013년 연세대 경제대학원 특임교수, 2014년 4월 한국은행 총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2018년 12월 국제결제은행 이사가 되죠. 이주열 총재 인생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은 2014년 4월, 2018년 12월일 것입니다.

국제결제은행 (BIS) 이사이기 때문에 단순히 국내 인물이 아니라 국제 인물이 되는 것인데요. 국제결제은행은 연방준비제도 (fed)와 함께 국제금융의 중추기관입니다. 자산 운용은 상업은행의 예금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예치된 예금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있는데요. 이것을 규제하는 것이 국제결제은행의 임무이며 국제금융을 컨트롤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신현송 교수 프로필

신현송 교수는 1955년생으로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아버지 직장을 따라서 영국으로 갔는데 이때 나이가 9살이었습니다.  영국 유학파인 신현송 교수는 영국 에매뉴얼 고등학교를 졸업했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에서 경제학 박사 되었습니다. 신현송 교수는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학, 철학을 공부했는데요. 2000년에는 런던 정경대학교 (정치 경제 대학교) 교수가 됩니다. 

여기서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런던 정경대는 국제 핵심인물들을 배출하는 곳으로 이곳에서 교수를 했다는 것은 엄청난 프로필입니다. 2006년 프린스턴대학교로 옮겨 교수가 되었고 그해 9월 IMF에서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정확하게 예측해 주목을 받았습니다. 신현송 교수는 대한민국 국적으로 용산 한미 연합사에서 현역으로 군 복무를 했는데요.

 

한국의 현재와 미래를 이끄는 사람들

2009년 이명박 대통령의 책사가 되어 국제 경제에 대한 조언을 했고 G20 의제 설정을 도왔습니다. 2014년 5월 1일 국제결제은행 경제 고문, 연구 책임자가 되어 국제와 한국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BIS (국제결제은행 또는 국제 청산은행)라는 최고의 국제 규제기관에 한국인이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한 것이죠. 연방준비제도 (Fed) 출신 김진일 교수가 국제적 일꾼이라면 신현송 교수는 직접 국가의 정책을 개발했고 적용시킨 리더입니다. 

"정계 인물이 관리자라면 경제계 인물은 선장이기 때문에 알아야 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김진일 교수, 한국 경제 지존의 프로필

김진일 교수는 대한민국이 자랑할만한 경제계 인물입니다. 2003년 ~ 2007년 9월까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경제학자였고 2007년 9월부터 2011년 8월까지 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선임 경제학자였습니다.

f1231.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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