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킵차크 칸국의 쿨리코보 전투 1380년 9월

 

1236년부터 1246년까지 몽골제국은 동유럽과 지금의 러시아 서부 지역을 쓸어버렸다. 킵차크 칸국이 세워지고 유럽은 사실상 몽골제국의 영향권 밑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특히 동유인들과 러시아인들은 (루스인) 고난을 겪었다. 이것을 몽골 타타르의 멍에라고 한다. 킵차크 칸국의 대칸은 이 지역에 다루가치 (관리)를 파견하여 러시아인들을 관리했다.

 

몽골의 지배를 받은 러시아인들

 

러시아인들의 대표인 대공이 되기 위해서는 다루가치에게 야를릭이라는 윤허장을 받아야 했다. 야를릭을 두고 러시아의 지도자들은 서로 경쟁했기 때문에 결속이 불가능했고 몽골에 대항할 수 없었다.

 

1304년 트베리 공국의 미하일은 모스크바 공국의 유리를 물리치고 킵차크 칸국의 칸으로부터 야르릭을 받아내었다. 그러나 1313년 우리는 우즈베크 칸 취임식에 참석하여 새로운 대칸에게 야를릭을 받고 우즈베크 칸의 누나인 콘차카와 결혼한다.

 

대공이 두 명이 되자 1317년에 전쟁이 일어났는데 미하일이 승리했고 유리의 아내는 포로로 잡혀서 죽임을 당한다. 이러한 분쟁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우즈베크 칸은 두대공을 사라이로 소환했는데 대칸에 저항했다는 이유로 미하일을 처형한다.

 

1322년 미하일의 아들인 디미트리가 대칸에게 조공할 것들을 빼돌렸다고 고발하여 유리는 대공직에서 박탈당한다. 1327년 사라이에서 디미트리와 유리가 마주쳤는데 디미트리는 결투를 신청하여 유리를 죽인다.

 

◆ 러시아 대공자리를 놓고 벌어진 암투

 

이사실을 알게 된 대칸은 분노하여 디미트리를 처형하고 1328년에 유리의 동생 이반에게 대공직을 수여한다. 몽골제국의 킵차크 칸국은 이런식으로 서로 경쟁하게 만들어 그들이 뭉치지 못하도록 유도했다.

 

과거 금나라가 몽골의 부족들을 이용했던 방법을 러시아 인들에게 (루스인)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1368년 몽골제국이 흑사병으로 무너지자 분위기가 바뀌었다. (명나라의 건국으로 중국땅에서 철수)

 

1368년 트베리 공국의 미하일 2세는 리투아니아 공국과 동맹을 맺고 마마이 칸에게 블라디미르 대공직 (야르릭)을 받는다. 그러나 모스크바 공국의 돈스코이가 블라디미르에 입성하는 것을 방해한다.

 

1375년 돈스코이는 트베리 공국의 영토를 침공하고 이전투에서 대승하게 된다. 다수의 루스 세력들은 돈스코이의 힘을 확인하고 그에게 충성 맹세를 했다.

 

◆ 저항하기 시작한 러시아인들

 

1378년 킵차크 칸국은 반란을 준비하는 돈스코이를 막기 위해 노브고르드로 군대를 보내 그곳을 파괴한다. 그러나 다음전투인 보즈하강 전투에서 킵차크 군대가 패배하여 굴욕을 당하게 되었다.

 

킵차크 칸국 마마이 칸은 리투아니아와 동맹을 맺은 뒤 20만 대군을 소집하여 진격한다. 돈스코이도 대항하기 위해 15만의 대군을 끌어모은다.

 

1380년 9월 8일 모스크바 공국의 돈스코이의 15만 대군과 킵차크 칸국의 마마이 칸의 20만 대군이 돈강에서 대치한다. 양측은 전장의 안개가 걷힐 때까지 기다렸다가 11시에 날씨가 좋아지자 진군을 시작한다.

 

삼국지연의에서는 일기토가 꾸며진 것이지만 유럽에서는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다. 돈스코이가 이끄는 루스 연합군의 페레즈벗과 마마이 칸이 이끄는 킵차크 군의 무르쟈가 나와 대결을 했고 격전 끝에 둘 다 사망한다.

 

◆ 쿨리코보 대전투

 

킵차크 군은 루스 연합군의 좌우측 부대와 선봉대에 맹공을 시작했다. 루스 연합군도 똑같이 양 날개로 공격하여 킵차크 군의 포위시도를 저지했고 혼전이 시작된다.

그러나 킵차크군의 돌파력은 대단했다. 중앙을 뚫고 들어가 돈스코이를 직접 노렸는데 돈스코이는 이런 상황을 대비해서 자신의 옷을 다른 사람에게 입혀 자신의 위치를 미리 숨겼다.

 

킵차크 군이 루스 연합군의 중앙을 무너트리고 양쪽을 공격하여 포위하는 형세가 되었다. 루스 연합군의 르제프와 브야젬스크가 중앙군이 완전히 격파당하기 않도록 수습했고 지원군이 합세하여 패배는 면하게 된다.

 

루스 연합군의 우익은 비교적 전력이 온전했으나 지휘관인 안드레이가 우유부단하여 시기를 놓친다. 전투가 막바지에 다다르자 양군은 예비대를 이용해 최후의 일격을 가하려 했는데 루스 연합군의 철기병이 선수를 친다.

 

◆ 킵차크 칸국의 첫번째 대패

 

전쟁터의 측면에서 루스 철기병이 돌격하자 킵차크 군의 진영이 먼저 무너지고 위기에 몰렸던 루스 군들도 사기가 올라 총공격을 감행한다.

 

유리한 전황에도 불구하고 체력과 기세에서 밀려버린 킵차크 군은 도주하기 시작했고 최초로 러시아 연합군에게 패배하게 된 것이다. 이전 투에서 킵차크 군의 사상자는 10만 , 루스 연합군의 사상자는 4만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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