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제국은 스페인과 함께 세계를 양분하며 천하를 다스렸다. 스페인이 아메리카의 큰 나라들을 모두 차지했다면 포르투갈은 남미의 동쪽, 아프리카, 인도, 동남아시아, 일본에 무역거점을 만들었다. 포르투갈은 해양 대제국을 건설했으나 모로코에게 일격을 맞고 스페인에게 합병되었다. 스페인은 대륙 세력인 프랑스 나폴레옹에게 공격받아 몰락한다.

 

영국의 베어링 세력은 손안대고 코 푼 격으로 스페인 제국과 포르투갈 제국이 건설한 거점을 모두 차지한다. 바다를 누비며 세계를 뒤흔들었던 짧고 굵은 그들의 역사를 알아보자. 1139년 카스티야 레온 연합 왕국과 전쟁을 하여 1143년 정식으로 독립을 승인받는다. 그 후 전함, 무역선을 이용해 해외 무역 거점을 만들며 세계로 뻗어나간다.

1415년 북아프리카 항구 세우타를 점령한다. 1480년 서아프리카 황금 해안에 요새를 건설한다. 1490년 앙골라 해안 루안다에 식민지를 만들고 노예무역 본사를 세운다. 1505년 동아프리카에 요새 건걸, 1507년 동아프리카 모잠비크 섬에 요새 건설. 1508~1509년 맘루크 왕조의 이집트 함대 격파. 1510년 인도 고아 점령. 1511년 말레이반도 끝 믈라카 점령, 페르시아 해안 호르무즈 점령. 1518년 지금의 스리랑카인 실론섬에 콜롬보 요새 건설. 1538년 오스만 제국 함대 격파 (디우 앞바다)

 

1543년 일본에 방문하여 총을 전해주고 1557년 중국 남부 마카오에 거류권을 획득한다. 잘나가는 포르투갈 제국을 아무도 막을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인생은 아무도 모르는 것 1578년 의외의 일격을 당하게 된다. 사실 대제국을 건설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속은 썩어 들어가고 있었다. 증가하는 배의 난파율 때문에 운송비가 늘어나 감당하기 힘들었고 대서양에서 해적을 퇴치하느라 막대한 유지비가 들었다.

향신료 무역 역시 독점 했던 이점이 점점 사라지면서 군주인 주앙 3세 시절 북아프리카 모로코의 요새 중 일부를 포기하기도 했다. 한편 이베리아 반도 건너편에 역사적 앙숙인 모로코가 있었다. 마린 왕조가 몰락하고 1550년 사디 왕조가 들어섰는데 오스만 튀르크 제국의 지원을 받은 알말리크 1세가 압달라 무함마드 2세를 폐위한다.

 

오스만 튀르크 제국이 북아프리카를 장악한 뒤 이베리아 반도를 공격할 의도로 본 군주 세바스티앙은 모로코 사디왕조를 공격할 준비를 한다. 외삼촌인 스페인 왕 펠리페 2세에게 지원을 요청했지만 아쉽게도 거절당한다. 같은 운명 공동체였음에도 불구하고 내심 국력을 소모하길 바랬던 것이다. 어쩔 수 없이 스페인, 이탈리아, 네덜란드, 독일 용병을 모아 1578년 17000명의 군대를 이끌고 사디 왕조를 공격한다.

사디왕조는 6만의 군대를 모았지만 세바스티앙은 질적 우세를 믿고 자신만만했다. 그러나 알카세르 키비르 전투에서 대패를 당해 군주인 세바스티안도 전사하고 만다. 대항해시대 이후 대부분 서구권의 승리였으나 이슬람 왕조에게 대패를 당하는 굴욕을 겪은 것이다. 이 패배는 굴욕에서 끝나지 않았다. 어려운 상황에서 막대한 전비를 들이고도 대패했기 때문에 사실상 파산한 것이다.

 

한편 스페인의 펠리페 2세는 1571년 레판토 해전에서 오스만 튀르크 제국을 물리치고 기세가 올랐다. 1580년 그는 대군을 이끌고 알칸타라 전투에서 포르투갈을 격파하고 왕위에 올라 양국을 다스렸다.  그러나 결국 스페인도 대륙 세력인 나폴레옹 군대에게 점령당하는데 스페인 육군 역시 한때는 최강이었으나 해양에서 국력을 소진해서 그런지 육지에서 맥없이 당한 것이다. 

"이베리아 반도 국가들은 배를 이용해 세계를 약탈하고 식민지를 건설했다. 그러나 그 성과를 후발주자인 영국 세력에게 넘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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