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시황이 춘추전국시대의 각국을 어떻게 통일했는지 알기 쉽고 간단하게 정리해보겠다. 진나라는 시안을 중심으로 국력을 키운 나라로 법치주의를 채택해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했다.

 

중국 땅을 차지했던 상나라와 주나라가 시안에서 발원했으며 이 지역에는 큰 이점이 있었다. 타림분지와 이어져있는 회랑의 접경지로 기마부대를 길러내고 야금술을 발달시키기에 좋은 지역인 것이다.

 

진시황은 제위 하고 11년 동안 혼란스러운 국내 상황을 안정시키고 외부로 확장을 시작한다.  BC 236년 진시황 최고의 신하인 이사의 계락으로 조나라와 연나라를 이간질하는 데 성공한다.

 

진나라는 양단화, 번오기의 남로 군과 왕전의 북로 군으로 대군을 둘로 나누어 진격하였다. 조나라는 파죽지세로 밀려오는 진나라의 군대를 막지 못했으나 연나라로 이동한 군을 회군시킨 후 장성에 의지하여 대치상태를 만든다.

 

진시황과 이목의 대결

 

진시황의 군대는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초나라 공격으로 전략을 바꾼다. 우호조약을 맺은 위나라가 초나라를 공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나라 조정의 신하들은 전략목표를 바꾼 것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진시황은 BC 234년 다시 번오기에게 10만의 진군을 맡겨 조나라를 치게했고 조나라 군대 10만과 붙어 대승한다. 그러나 다음 해 이목과의 전투에서 대패하고 본국의 처벌이 두려웠던 번오기는 연나라로 도주한다.

 

BC 232년 진나라는 다시 조나라 침공을 감행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나라의 상황이 심각했다. 가뭄으로 인해 농지 피해가 심했고 연이은 전투로 인해 국가 재정이 부족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나라 총대장 이목은 귀신같은 전술로 진나라의 대군을 물리쳤다. 하지만 물자가 부족했기때문에 추격하여 적을 섬멸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 후환을 남겨두게 된다.

 

 울료의 계략

 

진시황은 조나라 점령 실패 후 큰 도박을 감행한다. 울료가 국고의 전부인 30 만금을 이용해 6국 즉 모든 나라의 관리들을 매수하겠다는 전략을 제안한 것이다. 진시황은 이러한 계략을 과감하게 채택한다.

 

BC 230년 매수 전략이 성공하여 한나라의 일부 관리가 진나라에게 영토를 바쳤다. 진나라의 10만 주력군은 조나라는 치는척하다 한나라로 방향을 틀어 손쉽게 한을 점령했다.

 

그러나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른 상황이다. 한나라는 작은 나라였고 가장 강한 나라인 초나라, 라이벌 조나라, 북방의 강국 연나라, 부강한 제나라가 있었기 때문이다.

 

BC 231년 조나라에 대지진이 일어나 국력이 쇠락하자 진시황은 전쟁을 준비했고 BC 229년 조나라를 침공한다. 이때 출진한 병사는 무려 30만 명으로 병력의 숫자가 이전보다 몇 배나 늘었다.

 

모략으로 이목을 제거하다

 

진시황은 한나라의 병력 10만 명을 흡수한 뒤 호적제도를 정비하여 동원력을 높였는데 이 때문에 30만 대군을 출진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주력군인 왕전의 병력은 20만, 양단화, 강외가 이끄는 2군은 8만, 이신이 이끄는 3군은 2만으로 각군이 세갈래로 진격해 들어갔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10만의 조 군을 이끄는 이목에게 주력군이 발목 잡힌다.

 

뿐만 아니라 남쪽으로 진격했던 양단화도 저지당하자 대치국면으로 접어든다.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던 중 변수가 발생했다. 진시황의 매수 전략 결단은 이번에도 큰 힘을 발휘한 것이다.

 

조나라의 재상인 곽개를 매수하여 조나라의 명장 이목을 반란죄로 뒤집어 씌운 것이다. 이목이 없어지자 조나라의 군대는 진시황의 대군을 막지 못하고 빠른 속도로 무너졌다.

 

초나라의 최후

 

라이벌인 조나라를 멸망시킨 후 BC 225년 남방의 소국인 위나라를 공격했다. 공격군을 이끄는 왕분은 결사항전 중인 위나라의 성에 황하의 물을 끌어들여 수공으로 큰 피해를 입힌 후 점령했다. 한편 위나라 공격과 동시에 이신을 대장으로 몽염을 부대장으로 하여 20만 대군으로 초나라를 공략했다.

 

이제 초나라만 점령하면 대적할 나라가 없는 상황인 것이다. 그런데 초나라 왕족 출신인 창평군이 반란을 일으켜 진나라 군대가 고립될 위기해 처했다. 이신은 상황을 잘 수습하여 전멸을 피하고 본국으로 퇴각했다.

 

진시황은 최후의 결전을 위해 노장인 왕전을 다시 총대장으로 삼아 BC 223년 60만 병력으로 초나라를 공격했다. 왕전은 초나라 40만 대군을 상대로 획기적인 전략을 짰다. 1년 동안 대치상태로 끌고가 국력이 더 강한 진나라의 보급을 유지하여 상대를 파산시키는 것이다.

 

결국 초나라는 40만 대군을 대치 상태로 유지할 수 없어 후퇴했고 이때를 노려 총공격하여 초나라를 점령했다. BC 222년 연나라를 점령하고 BC 221년 제나라는 평화적으로 항복했다. 이로써 진시황은 중국 통일을 하고 황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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