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신상담은 누울 와 섶 신 맛볼 상 쓸개 담이라 해서 복수 또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어떠한 고난도 참고 이겨낸다는 고사성어다.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니지만 그만큼 월왕 구천이 칼을 갈아 복수에 성공하고 춘추전국시대 패자에 오른 것이다. 월왕 구천의 초반 스타트는 좋았다 왕위에 오른 해인 BC 496년 춘추전국시대 4대 패자인 오왕 합려가 대군을 끌고 월나라로 쳐들어왔다.

 

구천은 뛰어난 전술로 합려 본대에 기습을 가해 대패시키고 합려는 화살을 맞아 진중에서 죽었다. 춘추전국시대 4대  패자이면서 산전수전 다 겪은 합려의 대군을 쓰러트리고 합려까지 죽인일은 엄청난 전공이다. 합려의 아들 부차가 최고의 신하인 오자서와 함께 나라를 부흥시키자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먼저 오나라를 침공한다. 이때 월나라 최고의 신하인 범려는 반대했는데 범려의 우려대로 대패하고 말았다.

수성전에서 엄청난 전과를 올린 구천은 자신감으로 오나라를 공격했으나 수비하는 전쟁에 비해 공격하는 전쟁은 구천의 역량으로 무리였고 자신감은 곧 자만심이 되었다. 회계산에서 농성을 하며 궁지에 몰렸으나 범려가 오나라의 간신 백비에게 뇌물을 줘서 오왕 부차는 월왕 구천의 항복을 받아들인다.

 

사기에서는 구천 대신에 범려가 잡혀갔다고 나와있는데 일반적으로 월왕 구천의 아내가 부차의 첩 노릇을 하거나 구천이 부차의 마부가 되고 심지어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해 똥을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와신상담 이야기에서 쓸개를 맛보며 복수를 다짐했다는 것은 허구이고 정확히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치욕을 겪은 것은 사실이다. 

월왕구천 7년 BC 487 범려의 공작으로 간신히 월나라로 돌아온 구천은 공작으로 오나라의 국력을 약화시키고 월나라의 국력을 키웠다. 오왕 부차를 안심시키고 향락에 빠지게 하여 오나라 최고의 신하인 오자서를 자살하게 만들었다. 때를 기다리던 중 오왕 부차가 패자로써 중원의 회맹에 나가자 구천은 오나라를 공격했다.

 

부차는 다급하게 돌아왔지만 결국 월나라의 대군을 막지 못하고 항복했다. 구천은 대인배의 모습을 보여줬는데 예전에 자신의 항복을 받아줬으니 부차를 죽이지 않고 백 호장으로 임명한다고 했으나 이를 치욕스럽게 여긴 부차는 고소산에서 오자서에게 용서를 빌며 자결했다. 그러나 춘추전국시대 패자로써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이 말년에 판단력이 흐려져 범려 포함 뛰어난 충신들을 버리거나 죽였다.

"월왕구천의 청동검은 보존상태가 좋아 세계적으로 가치가 높은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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