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시 유목 연합인 아파나세보, 기마 연합인 안드로노보를 지나 스키타이는 인류 최초로 거대한 유목 연합을 구성했다. 인류의 숙제는 성벽을 이용하여 이들을 막아내고 문화를 보호하는 것이다. 글쓰기가 발달하여 인류는 정보를 후세에 자세히 전승할 수 있게 되었다. 인도는 1200년대 무굴제국 시대에도 역사서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고 이 당시 책을 통해 정보를 후세에 전송할 거대 집단은 중국과 아랍지역이 유일하다.

 

중국은 스키타이 유목연합에게 점령당하지 않기 위해 성을 쌓아 방어했고 춘추시대를 열었다. 춘추시대는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서로 도와 협력하면서 경쟁하는 체제다. 스키타이는 흑해지역의 초원지대 지금으로 치면 남러시아를 차지하고 카프카스 산맥을 넘어 남진했다. 카프카스 산맥 너머에는 아랍지역과 이집트가 있었다.

스키타이는 아랍지역으로 들어가면서 메디아를 공격하여 왕국을 완전히 해체시켜 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죽고 문화가 파괴 되었다. 소아시아 지역에서 시리아까지 장악하고 이집트를 공격하러 들어갔으나 이집트 왕 프삼메티코가 조공을 바치며 살려달라고 애원하여 회군했다. 회군하는 길에 스키타이는 시리아 팔레스타인 지역을 약탈했는데 블레셋 인들이 세운 아프로디테 여신 신전을 약탈했다.

 

스키타이는 아랍지역을 지배하고 조공 체제를 확립했다. 아랍세계는 유목연합인 스키타이에게 조공을 바쳐야 하는 신세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20년 동안이나 이어진 가혹한 지배 체제에 저항하여 BC 614년 메디아 인들이 대규모 반란을 일으킨다. 카프카스 북쪽 초원으로 쫓겨나 자리 잡은 스키타이는 이곳을 기점으로 중부 유럽을 침략하여 전성기를 맞이한다.

아랍지역에 있던 아시리아는 무사했다. BC 678년 키메르인을 공격하다 길을 잘못 든 이샤파카이 장군이 이끄는 스키타이군을 성공적으로 막아냈고 이후 키메르, 메디아 공격 때 스키타이를 도왔다. 원시적인 등자를 만들어 말위에서 다양한 공격이 가능해졌고 기마 궁술은 당시로써 충격적이었다. 전차를 이용한 공격에서 직접 말을 타면서 더욱 발전시킨 것이다. 몽골리언과 백인 혼혈인 스키타이인들은 통치력이 서툴러 지배하다가 한계에 부딪히면 근거지로 철수한다.

 

메디아인의 반란도 메디아인이 스키타이보다 강했다기 보다는 스키타이가 메디아를 제대로 통치하지 못한 것이다. 세대가 지날수록 유목 연합의 통치술은 올라가지만 이 당시는 많은 부분에 있어서 부족했다. 동부, 중부 유럽과 아랍에서 획득한 노예를 되팔며 교역을 하는 동안 아랍지역의 나라들은 이후 어떻게 하면 유목 연합을 막을 수 있을지 고심하게 된다.

"성벽은 유목연합의 기병을 막는 최고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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