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문공은 찐 나라의 왕위 계승 내란으로 인해 19년 동안 방랑한 뒤 고국으로 돌아와 즉위한 인물이다. 즉위한 후 재위 기간은 8년으로 짧았으나 제환공에 이어 2대 패자가 되었다. 패자에 대해 간략히 말하면 진나라 통일 이전 주나라 황실을 모시는 강력한 나라의 왕을 뜻하는 것이며 춘추시대까지 지속되었다. 춘추시대 이후 전국시대에서는 통일전쟁이 시작된다.

 

현상황과 가장 비슷한것이 춘추시대라고 할 수 있는데 세계 금융 엘리트 연합을 위로하여 미국이 주도하는 것과 같다. 중국은 아직 미국의 상대가 될 수 있는 실력이 아니지만 장기전으로 끌고 들어가 대등한 상대가 되길 원한다. 다시 진문공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대부분의 글이 진문공의 방랑 기간인 19년 동안의 이야기에 대해 쓰고 있다. 그러나 재위 기간 동안 중원에서의 영향력이 더 중요한 의미가 있기 때문에 이것을 먼저 알아보고 방랑 이야기는 그다음에 소개하려고 한다. 진문공2년 BC 635년 힘없는 종주국인 주나라에서 정변이 일어났다. 주양왕이 동생 대왕자가 주양왕을 몰아낸 것이다. 주양왕은 정나라로 피신했는데 진문공이 대왕자를 토벌한 뒤 주양왕의 자리를 다시 찾아 주었다. 

 

주양왕에게 하내와 양번 땅을 받은 진문공은 중원의 패자가 되었다. BC 633년 진문공 4년 남방의 강력한 이민족의 나라인 초나라가 송나라를 침략했다. 진문공은 찐군을 이끌고 송나라를 지키기 위해 출전했다. BC 632년 초나라에서 망명할 때 신세를 지고 약속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유리한 상황에서 후퇴 해준후 대회전 (주력군끼리 평지에서 격돌)에서 초나라를 무너트렸다.

초나라 편에 붙었던 정나라를 진목공과 함께 정복했다. 진목공은 군사적으로 강력한 왕인데 춘추오패 (춘추시대 5명의 패자)에는 정식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BC 631 진문공 2년 호왕자, 송나라 공자 공손고, 제나라의 귀보, 진나라의 원도도, 진나라의 소자은과 함께 적천 땅에서 회맹했다. BC 630년 진문공 7년 진목공과 함께 정나라를 포위했으나 숙첨이 기지를 발휘 하여 진목공을 설득해 회군하게 만들었고 진문공을 설득해 찐나라에 인질로 잡혀있단 란 공자를 정나라의 세자로 세울것을 요청했다. 진문공은 정나라의 후계자 없던 상황이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

 

BC 628년 진문공 8년 서거했는데 이미 군주가 되었을 때부터 노인이었기 때문에 재위 기간이 짧을 수밖에 없었다. 짧은 시간 안에 찐 나라의 기반을 만들어 놓았고 사후에도 찐나라의 국력이 유지된다. 나중에 진나라가 위, 한, 조나라로 갈라지긴 하지만 이 나라들도 강국이었다. 그러나 역사의 흐름은 찐나라에서 초나라로 넘어간다.

"진문공은 대기만성형 캐릭터의 시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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