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이 어떻게 부강해졌는지 알아보기 전에 먼저 간단하게 고조선이 어떤 나라인지 알아보도록 한다. 고조선의 선주민은 홍산문화지역에 살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황하문명과 운명이 갈리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유목민족의 침입이었다. 이들과 함께 어울려 살고 황하 지역의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고조선만의 문화가 형성된다.

 

고조선은 반유목 반농의 집단으로 두만강 압록강 일대의 산족들이 (동북지역의 산악 민족) 요동반도 일대에 자리 잡았다. 황하와는 달리 요하는 유목민들의 침입을 막기 힘든 위치에 있어 개간되기 어려웠다. 완전한 유목민도 아니고 완전한 정주민도 아닌 정착형 기마민족인 것이다. 알아둘 것은 고조선의 결속이 약하고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는 것이다. 동아시아에서 한 국가의 영향력이란 진나라의 통일 이후 강력해지는 것이라 영토의 크기에 집착할 이유가 없다.

국가가 강력해지려면 두가지 길이 있다. 첫 번째 수많은 말을 확보하여 교역하거나 약탈하는 하는 것이다. 이들의 주요 수출품은 말과 양이다. 이를 위해서는 유라시아 북방 초원을 장악해야 한다. 두 번째 길은 농사를 짓고 공예품 직조품을 만드는 것이다. 주요 수출품은 곡식과 공예품, 직조품이다. 이를 위해서는 농사짓기 좋은 큰 강을 확보하고 성을 쌓아 유목민의 침입을 방어하는 것이다.

 

고조선은 모피와 과하마를 제나라를 통해 황하 민족들에게 보급했다. 중원에는 활이 많지 않았는데 고조선은 강력한 활을 보유하였고 활로 맹수들을 사냥하고 말을 길들여 수출했다. 과하마는 과수원 나무 밑을 지나갈 정도로 작은 말이라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여졌는데 지구력이 좋고 영리하며 산악 지대 사낭에 최적화된 말이었다.

중국역사인 시경, 한역 편에는 BC1300~BC1200년 고조선이 붉은 표범가죽과 곰 가죽을 수출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당시는 원시 고조선으로 BC 732년 정가와자 문화가 나타나면서 고조선이 만들어지기 전이다. BC 700년 관자에는 고조선의 문피 (호랑이 가죽, 표범가죽)의 무늬가 아름다워 천하의 일곱 가지 특산물 중 3번째의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표범은 나무를 잘 타기 때문에 호랑이보다 사냥하기 어려워 가격이 더 높았다. 한 장의 표범가죽은 가치가 천금에 달한 다고 했다.

 

제나라는 새털을 이용해 만든 타복과 고조선의 문피를 교환하려고 했다. 관중이 말하길 고조선과 교역하면 그들이 쳐들어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봐서 고조선의 군사력은 강력했던 것으로 보인다. 고조선은 강력한 군사력에도 불구하고 서쪽 스키타이 대연합 (유목민족)에 막혀 중원으로 치고 들어가지 못했다. 요하를 기점으로 스키타이 대연합 동호, 고조선, 연나라가 힘의 균형을 이뤘다.

"고조선은 문피와 과하마를 수출하고 정착형 기마민족만의 노하우를 쌓아 고구려와 한반도인들에게 계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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