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르족은 흉노(훈)가 멸망한뒤 세력을 키웠는데 576년 서투르크의 공격을 받고 복속되었다. 7세기 초 비잔틴제국은 사산조 페르시아에게 복수하기위해 카자르족에게 접근한다. 비잔틴제국의 황제 


헤라클레이오스는 딸을 카자르의 칸에게 주었다. (칸을 만나러가는도중 병으로 죽었다) 답례로 어린아들을 인질로 주고 4만의 병력을 지원한다.  비잔틴제국과 혈맹관계인 카자르는 서쪽의 불가리아를 공략하고 남쪽에서 아랍지역의 나라 오마위야 왕조와 전쟁을 했다.  



카자르칸국은 유럽으로 들어가는 북쪽관문인 캅카스 지역을 아랍과 이슬람세력으로 부터 지켜냈다.  그들의 전통신앙인 텡그리신앙만으로 사회를 유지할수 없게되자 새로운 국교가 필요했다. 카자르의 칸 불란은 서쪽(기독교)과 남쪽세력(이슬람)에 속해있지 않으면서 양종교와 관련이 있는 유대교를 선택했다. 


카자르에는 이미 수많은 유태인이 있었고 묵축을 하는 카자르인과 문화적 혈통적으로 가까웠다. 유목민은 국교를 정해도 다른종교를 탄압하지 않기 때문에 전통종교를 유지했고 기독교나 이슬람교도 존재 할수 있었다.  



카자르가 유대교를 국교로 정한것은 유태인들에게는 엄청난 희소식이였다. 상업을 통해 부를 쌓은 유태인들은 카자르칸국으로 몰려갔으며 칸은 유태인의 성전인 시나고그를 건립해주었다. 국교를 건설하기 위해 수많은 랍비와 시나고그는 필수였다. 땅없이 배타고 돌아다니며 장사하는 유태인들을 초원의 땅으로 인도하여 품은것이다. 


이것은 제2의 이스라엘이라 부를만했다. 유태인은 1327년만에 드디어 제2의 이스라엘을 땅을 찾은것이다. 몇백년동안 카자르인과 유태인은 서로 동화되어 한민족이 되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어둠의 그림자가 몰려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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