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왕 합려는 춘추시대 패권국이었던 초나라를 멸망 직전까지 몰아붙이고 패권국이 되었다. 오역시 초처럼 남방 국가로 주황실을 보위하는 국가들과 성격이 다르며 이후 등장하는 5대 패자 월왕 구천 역시 남방 국가의 왕이다. 주황실의 권위는 점점 추락하고 있으며 이는 이민족을 경계하기 위한 연방체의 힘이 약화됨을 뜻한다.

 

춘추시대가 끝나자 진의 통일과정인 전국시대가 시작된다. 진역시 서쪽의 기마민족이라 할 수 있는데 중국 역사는 수성으로 버티다 결국 실패하는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성의 한계이며 한국사 역시 마찬가지다. 오왕 합려는 역사적으로 유명한 손무를 등용했다. 손무는 바로 손자병법의 저자이다. 당시 최고의 군사력은 유목 연합의 기병이었으나 그들에게는 글이 없었고 손자병법은 병종을 떠나 전쟁 그 자체의 원리와 철학을 담고 있다.

오왕 합려는 최고의 신하 오자서의 도움으로 즉위했다. 최고의 문관을 얻었으면서 동시에 최고의 무관인 손무를 얻었다. 예법에 있어서 최고의 가문인 백가의 백비를 대부로 임명했다. 최고의 진영으로 스타트한 오왕 합려는 즉위 3년 후 BC 512 초나라와 서땅을 공격하여 초나라로 망명한 촉용과 개여를 죽였다. 곧바로 초나라의 수도인 영까지 공격하려 하였으나 손무가 백성이 지쳤다는 이유로 만류하여 그만둔다.

 

춘추시대 오왕 합려 4년 BC 511 초나라의 육, 첨 땅을 공격하여 복속시켰다. 오왕 합려 5년 BC 510 월나라를 공격하여 굴복 시켰다. 오왕합려 6년 BC 509 초나라의 낭와가 오나라를 침략했고 합려는 대응하여 예장 땅에서 초군을 격파한 후 거소를 복속시켰다. 오왕합려 7년 BC 508 오자서와 손무에게 초나라 수도 영성을 칠 수 있는 계책을 물어본다.

오자서와 손무는 초나라의 낭와가 욕심이 많은 사람이라 당나라와 채 나라가 싫어한다 하여 두나라와 협력 후 공격해야 한다고 간언 하였다. 합려는 그대로 실행하여 대군을 이끌고 한수에서 크게 격파하고 수도인 영성에 이를 때까지 다섯 번 연속 격파했다. 초소 왕은 혼비백산하여 운땅으로 도망갔다. 오왕 합려 10년 BC 503 원정을 떠나 초나라에 군대가 없는 것을 이용하여 월나라 쳐들어왔다.

 

합려는 급한 대로 진나라를 이용해서 월군을 막고 있었는데 초전쟁 때 공을 세운 동생 부개가 반란을 일으켜 오왕이 되었다. 이사실을 안 합려는 전군을 이끌고 반란을 진압했으나 부개는 초나라로 망명하여 제후가 되었다. 합려 11년 BC 502 훗날 뒤를 이어 왕이 되는 태자 부차에게 공격을 명하여 초나라 번 땅을 복속시켰다. 오에게 지속적으로 공격을 받자 초소 왕은 수도를 영성에서 약으로 천도했다.

"합려 19년 BC 496 월나라를 공격했다가 패배하고 죽게 되자 태자 부차가 왕위에 오른다"

반응형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