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을 결집 시키려면 과거로의 회귀가 필요했을것이다. 명나라는 반몽의 가치를 들고 일어난 나라였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그러나 명나라는 정치제도 부터 시작하여 몽골제국의 우수한 시스템은 그대로 받아들여야 했다. 선두를 달리던 자가 방심하여 추월 당하는건 세상의 이치이기도 하지만 추월당하는 시점이 어느때인지도 중요하다. 


우선 몽골제국은 텡그리 기술혁명을 일으켰다. 텡그리 기술혁명은 필자가 만들어낸 용어인데 이것이 무엇인지 간단히 설명해보겠다. 텡그리 기술혁명이란 몽골제국이 전세계에 무역루트를 뚫어 전세계의 기술을 한곳으로 결집 시킨것을 말한다.   



동양기술이 가장 앞서긴 했지만 동양이 가지지 못한것들을 전세계 각나라들은 가지고 있었고 서로 교류하여 기술을 발전시켰다. 인터넷이 없던 시대에 몽골제국이 뚫은 무역루트와 적극적인 재정지원을 통해 기술이 혁신적으로 발달했다.  


전세계적으로 나라의 근본이 나라밥을 먹는 관리와 농사를 짓는 농민이라 생각했으며 기술자, 상인들은 하층에 있었다. 몽골제국은 정복전쟁을 펼치면서 후반기에는 화총과 포를 실전에 투입하였다. 기병에 화기군단을 추가하여 적들을 쓸어버린것이다.



적들은 몽골제국이 용과 같이 다니는줄 알았으며 공포에 짓눌린 상황에서 제대로된 전쟁을 할수 없었다. 개전 초기에 연막탄을 맞고 정신을 못차리는 사이 집중 포화를 맞는다던지 성위에서 공격해도 포격을 맞고 고립되어 무너졌다. 최고의 전투 자원으로 여겼던 말 이상의 무언가가 있었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뿐만아니라 자체적으로 충분한 재화를 생산해내지 못했기 때문에 상인에게 의존했는데 농민이상으로 상인이 중요하다는것을 알게 되었다.

명나라는 이러한 가치를 그대로 이어가지 않고 과거로의 회귀 즉 복고풍을 선택한것이다. 물론 과거의 잃어버렸던 무엇인가를 찾는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시기에 킵차크 지역에서는 과거 국가가 지원했던 텡그리 기술혁명에서 상인이 지원하는 상업 기술혁명이 일어났다. 이것은 새로운 기술혁명이자 정치혁명이기도 했다. 반면에 명나라는 과학의 토대가 될수 있었던 주자학을 버리고 양명학을 선택한다. 인류에게 봄이 왔고 명나라에게는 춘곤증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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