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68년 명나라가 건국되었고 선덕제가 서거한 1435년까지 명군은 세계최강의 군대였다. 최대 300만의 군대를 동원할수 있었으며 무기의 차이를 생각할 필요없이 몽둥이 하나만들고 인해전술로 붙어도 명을 이길나라는 없었다. 수군제독 정화는 대규모 함대를 이끌고 중국에서 출발하여 아프리카까지 갔으며 조공무역을 했다. 서쪽 끝을 제외하고는 모든나라가 명나라에게 고개를 숙인것이다.


임진왜란을 주제로한 드라마를 보면 명나라는 칼과 활을 들었으며 대포를 끌고와서 공격하는 모습이 나온다. 군기강은 엉망이고 조선군에게 민폐를 끼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은 명군의 좋지 않은 모습만 강조한것이다. 명군이 없었다면 일본을 물리칠수 없었을것이며 이겨냈다 하더라도 국토는 회복할수 없을정도로 망가졌을것이다. 




명나라는 주원장이 통일전쟁을 벌였던시대부터 개국 초기에도 화약무기를 사용하여 전쟁을 치뤘다. 청동 화총을 개량하여 끝부분을 제외한 나머지부분을 나무로 만들어 무게를 줄였다. 


화약에 의해 날아가는 화살인 화전을 연발로 쏠수있는 전차를 끌고 다녔으며 공성전에서는 대포를 사용한 포병이 활약했다.  화총병의 경우 사정거리가 짧아 궁사들의 사정거리 안에 들어갔기 때문에 두꺼운 갑옷을 입었다. 지뢰나 수뢰역시 명나라 시대에 발명하여 적을 살상했다.




1435년 선덕제 서거후 정치적 혼란이 계속되었다. 1518년 무기제작기술이 서양에 역전되었는데 이것을 단순히 정치적 혼란을 원인으로 할수는 없다. 서양은 몽골제국의 장점을 그대로 계승하여 상업혁명을 일으켰고 중국지역은 점진적 균형발전을 추구했는데 여기서 차이가 벌어졌다. 물론 이것은 아메리카,아프리카 대륙지배가 없었다면 발생할수 없는 차이다. 명이 주자학을 버리고 양명학을 선택한것도 치명적이였다. 


역전이라 해서 완전히 역전되었다는 뜻은아니다. 역전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며 명나라는 불랑기포와 홍이포 등등 서양무기들을 사들여 개량하였다. 조총을 동아시아 최초로 도입하였고 2만의 조총병을 갖고있었다.  두번째 이미지는 신뢰총이라고 하는것인데  점화시간이 늦는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5개의 총신에서 차례로 발사되었다. 한마디로 기관총인 것이다.  점화실패를 방지하기위에 앞쪽에 방패를 달고 적이 접근했을때 도끼나 창으로 싸울수 있도록 총에 장착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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