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타이트 제국은 전투마차와 철기로 오리엔트 지역에 충격을 주었다. 당시 오리엔트 지역은 가장 문명이 발달한 곳으로 건축술이 뛰어났다. 그러나 힘들게 쌓은 문명도 군사력이 약하면 빼앗길 수 밖에 없다. 히타이트는 말과 수레를 연결한 마차로 군대를 만들었는데 유라시아 초원의 안드로노보 문명 (카자흐스탄 지역) 으로 부터 전수 받아 많은 나라들을 정복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목민의 개념은 BC900년 스키타이의 선주민인 킴메르인으로 부터 시작 되는데 안드로노보 문화에서 이어지는 히타이트 제국은 원시 유목민이라고 할 수 있다. 히타이트의 역사는 하티왕 팜바 (BC2300)에서부터 시작하지만 존재감을 드러내는 것은 BC1680년 라바르나 1세부터다.

라바르나 1세는 히타이트의 기원이 되는 하티의 적통을 잇는 왕으로 히타이트 고왕국을 창업한다. 전설적인 왕으로 알려졌으나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라바르나는 왕을 뜻하는 단어이며 사실상 하투실리 1세 가 라바르나 1세라고 한다. BC 1594년 바빌론을 공략하여 영토 확장을 하기 시작했고 BC1343년 최대에는 영토를 확보했다.

 

이집트 다음가는 제국이 된 히타이트는 BC1274년 카데시에서 격돌하게 되는데 하투실리스 2세와 람세스 2세의 대결이자 히타이트 제국과 이집트 제국의 운명을 건 대전쟁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히타이트의 근소한 승리로 추정된다. 그러나 더 이상 치고 들어갈만한 힘은 없었고 양쪽 다 극심한 피해를 입어 BC1269년 평화조약을 맺었다.

이집트의 람세스 2세는 히타이트의 왕녀를 왕비로 맞이하여 평화의 시대를 열었는데 인류 최초의 평화조약으로 평가받고 있다. 카데시 전투 후 양측다 극심한 피해를 입어 국력이 떨어지게 되는데 사실상 무승부가 된 가장 큰 이유는 이집트의 전차군단 때문이다. 이미 이집트 15 왕조 때 아시아의 호전적 집단인 힉소스에게 점령당했고 그때 전차를 비롯한 무기들이 들어오게 되어 전차부대를 운영하게 된다.

 

가장 미스터리 한 부분은 힉소스라는 원시 유목민 제국에 대한 기록이 거의 없으며 히타이트 라바르나 1세 때와 기록이 겹친다는 점이다. 활동무대와 시기가 같았음에도 히타이트와 힉소스의 유사성에 대한 내용을 찾기란 쉽지 않다. 정황상 가장 유의미한 내용은 바로 이것이다. 안드로노보 문화를 대표하는 동양인들이 오리엔트 지역으로 전차를 끌고 내려와 전차가 없었던 이집트와 오리엔트 지역의 국가들을 휩쓸었다.

"전투마차로 무장한 군대를 막는법은 똑같이 전투마차로 대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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